2023년도 34주년 기념 세계일보 세계미술전 선정작가 성태훈개인전 미술비평(이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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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훈의 "선유도왈츠" - "전통과 현대의 혼성적 왈츠,
화엄세상을 향해 가는 배",
성곡미술관, 2023.2.15(수)~28. 이건수(미술비평)
전통과 현대의 혼성적 왈츠, 화엄세상을 향해 가는 배
이건수 (미술비평)
현대 한국화의 전개 과정 속에서 성태훈은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하고 실험하는 ‘한국화의 누벨바그’, ‘퓨전동양화’의 중심 세대라 할 수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서구화의 위세 속에서 전통적인 소재와 기법으로 안온한 자세를 취하던 한국화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고, 1980년대 초중반을 시작으로 지필묵의 재료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실험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재료적 한계의 극복뿐만 아니었다. 수묵정신을 숭상하는 수묵의 고답적 경향을 탈피하는 민중의 언어들, 팝적인 색채들이 화선지 위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묵문인화의 정통성은 지루함을 계속했고 민화나 벽화와 같은 강렬한 채색의 목소리는 한국화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예고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1980년대 민중미술과 형식주의 미술의 대립은 이론과 실천의 장에서 경쟁을 이루며 각 장르에서 우리미술의 현대화를 성취해갔다. 어찌됐건 한국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고 한국화는 이전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활로를 뚫었다.
1990년대에는 이런 장르 간의 혼성, 경계의 해체, 회화의 탈엄숙주의가 더욱더 가속화 되면서 한국화는 깊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경계와 영역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물결과 바람 속에서 다양화되었다. 수묵화와 채색화의 위상이 역전되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화의 민주화는 확산되었다. 성태훈은 이런 새로운 경향 속에서 자신의 화업을 본격화했다. 이미 고교시절부터 전통화의 기본을 습득한 그는 자신의 관점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어내느냐를 화두로 삼았고,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표현상의 언어나 주제를 우리시대의 어법을 통해 소통시키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했다.
동시대에 대한 역사인식, 시대인식을 화면 속에 민중미술적인 직설법으로 개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도상을 개연성 있는 조건 속에 병치함으로써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발화를 가능케 하였다. 사군자나 산수 같은 전통적인 모티프에서 시작하지만 요소요소에 그 자신의 시대적 성찰, 역사적 체험을 배치함으로써 우리시대의 새로운 사군자, 새로운 산수화로 변모시킨 것이다.
1980년대 거대담론의 힘찬 소용돌이를 거쳤기에 그는 1990년대의 개개인의 사적인 감정과 소소한 일상을 표현하는 소담론의 시대를 수용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태훈은 전통적인 수묵의 필획을 중심에 두었지만 먹을 겹치면서 지워간다는 수묵화의 장점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거대한 풍경이미지를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정경에 오버랩 시키는 일종의 영상기법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시공간에 혼재하는 기억의 흔적을 이처럼 효과 있게 표현한 방식은 다른 회화 장르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탁월하다.
거대담론과 소담론의 소재적이고 주제적인 융합은 일종의 절충주의를 낳으면서 진부함으로 나아가려는 수묵의 필획을 방해하는 비약적인 사건과 주제의 개입을 통해 화면은 점차 낯설어지고 의미있는 참신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시기 이와 함께 자주 나타나는 표현법이 점묘법인데 주로 배경에 찍힌 그 수많은 점들은 단순한 여백의 빈 화면으로 남길 거부하는 어떤 감정의 다스림이나 응결, 기억의 축적 같은 의미로 남아 주제의 이미지와 융합하면서 화면에 고유한 정조를 고양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성태훈의 화면은 언뜻 보아 전통에 기반을 둔 한 장의 수묵화로 인식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들어간 현대적 아이콘들로 인해 또 다른 맥락의 사건성이 개입되면서 화면은 전통과 현대의 요소들 간의 작은 부조화와 갈등을 발생시킨다. 이런 이질적인 시간과 사건의 충돌은 그토록 고요했던 화면에 긴장감 어린 활력을 부여하면서 오히려 전통과 현대가 화해하는 접점의 순간을 만들어 준다. 오래된 미래와 새로운 과거가 교차되는 장이라고나 할까.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은 역시 <길을 묻다Ⅰ>(2006)라고 할 수 있겠다. 전쟁의 참상인지 콘크리트 페허가 만들어 놓은 산수의 풍경 속에 시원한 폭포가 흐르는가 하면 돌다리도 있고 걸프전의 작전에 돌입한 군인들, 등산하는 사람들, 사진 찍는 사람들, 화투치는 사람들, 그리고 구석에서 자위하는 한 남자, 상공을 배회하는 전투헬리콥터까지 시간과 공간이 다른 각각의 맥락과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무거운 분위기의 전형적인 산수화를 우리시대의 이야기가 담긴 풍경화로 변모시켜 놓았다.
전반기의 시공간의 은유적 결합은 이후 <날아라 닭>(2009) 시리즈로 전개되는데 날 수 없는 존재들의 비상을 고고한 지조의 상징인 매화와 대치시킴으로써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인 풍경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간극 속에서 느껴지는 부조리의 현실을 풍자한 일종의 세태고발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날아라 닭> 시리즈는 옻칠화의 기법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점점 동양적인 색채와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주제의식 보다는 옻칠이 자아내는 채색적 효과와 깊이에 집중하게 되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오방색의 무지개빛 꽃이 피는 <웃는 매화>(2022)로까지 이어지면서 좀 더 대중적인 이미지를 지닌 우리시대의 민화로 발전하게 된다.
<날아라 닭> 시리즈는 성태훈이 수묵화에서 채색화로, 더욱 나아가 옻칠화의 깊은 색감까지 도달하는 총체적 한국화 모색의 계기가 되었다. 수묵화와 채색화의 대립적 기반과 존재이유가 그 자신 안에서 붕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수묵의 전통기법과 정신주의에 매몰되다 보면 수묵화는 비역사적 관념주의와 사적인 심리의 표현주의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 성태훈은 화면에 시대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러티브적 요소를 그려 넣어 민화나 벽화에서 보는 대중적인 친근함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 형식과 기법으로 현대적 내용과 주제를 포용하여 한국화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꾸준히 모색해 온 성태훈은 최근 재료나 소재, 주제 면에서 또 다른 도약을 이루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대작 <선유도 왈츠>(2022)를 완성했다. 아크릴로 그려졌지만 동양화의 준법과 채색법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 그림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 6년여의 세월이 담긴 그의 작품세계를 총결산하는 성태훈 화력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옛 그림에 뱃놀이(船遊)를 그린 그림이 많지만 선유도(仙遊島)는 신선이 노닐었다는 양화대교 옆의 작은 섬이다. ‘선유도 파크호’라고 이름 붙은 거대한 배가 서쪽바다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 그것은 불교미술에서 일체의 사물과 도리를 밝게 통찰하는 더없이 완전한 지혜인 반야에 의지하여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향해 가는 배를 그린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의 현대적 버전인 것이다.
성태훈은 “대학졸업, 교통사고로 인한 병원 생활, 결혼, 출산, 부모님의 작고, 킵워킹펀드상 수상, 작품 활동, 후원자들과 도움을 준 사람들 등 나의 지나온 삶의 여정을 모티프로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을 왈츠로 표현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굵직한 현대사들(8.15 6.25 4.19 6.10 5.18)과 남북분단으로 인한 긴장 상황을 전투헬기와 장갑차로 표현했다.”라고 말한다.
개인사와 현대사가 서로 뒤엉켜 춤추는 왈츠의 축제성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이라는 가요 <아!대한민국>의 낙천적인 가사로는 설명 안 되는 부분들이 숨어 있다. 하늘에 떠있는 애드벌룬, 배 주위를 따라 뛰어오르는 돌고래, 하늘을 향해 치솟는 대형분수, 배 주변을 따라붙는 수륙양용차, 하늘에서 감시하는 듯한 전투헬기는 선상의 행복감을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들이며 은근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거대한 돛처럼 느껴지는 미루나무는 어느 누구에게는 동요 속의 낭만이 아니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이전처럼 성태훈의 화면은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담은 평화로운 풍경으로 읽혀지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전쟁의 공포, 혁명적 사건 등 심각한 거대담론의 흔적들이 숨겨져 있다. 마치 데이빗 린치의 영화 속에서 일상에 가려져 있는 광기, 아름다움 속에 스며든 추악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그의 그림은 그 정도까지 극단적이지는 않을 지라도 시대와 역사, 일상과 현실 속에 담겨진 부조리한 현상을 드러내준다.
때문에 이 평화로운 파노라마에서 우리는 또한 작가의 현실비판적인 시선과 함께, “인생은 클로즈업해서 보면 비극이고, 롱샷으로 보면 희극(Life is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medy in long-shot.)”이라는 채플린의 말에 공감하면서 불안과 행복이 교차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상의 풍경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선유도 왈츠>의 잔치성이 자아내는 구성적인 유사성을 우리는 단원 김홍도의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1804)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송악산 아래 만월대에서 열린 환갑노인들을 축하하기 위한 계회를 그린 이 그림에는 화면 위의 긴 발문과 단원 자신만의 준법으로 그린 송악산의 모습, 그 아래 마당처럼 펼쳐진 잔치 풍경과 주변 군상들의 모습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등장인물만 300여 명. 부감으로 보면 하나의 잔치가 진행되고 있지만 요소요소에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지닌 인물들이 독립적인 제 목소리를 내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화음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단원의 작품 속에 담긴 축제성이고 카니발리즘이다.
카니발은 구경꾼과 참여자가 분리된 볼거리(스펙터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고 향유하는 떠들썩한 판이다. 그리고 이 카니발리즘을 가능케 하는 것이 다성악(polyphony)적 구조인 것이다. 등장인물이 저마다의 역할을 감당하며 각각의 소주제를 이끌어가는 이 총체적 카니발의 하모니에서 우리는 한국미의 전형을 발견한다. 그림의 어느 부분을 잘라내어 확대할지라도 하나의 독립된 그림으로서 손색이 없다. 서구의 고전적 미론이 얘기하는 ‘다양성의 통일과 조화’와 일치하는 보편적인 미적 특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다성악적인 화음의 웃음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수화(풍경화), 풍속화, 기록화를 하나의 화폭 속에 모두 조화롭게 담아낸 단원의 성취를 우리는 성태훈의 <선유도 왈츠>에서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끊이지 않고 언급되는 한국화의 위기 속에서 필묵의 표현법을 지키면서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내려는 성태훈의 노력과 시도는 주목받고 재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선비의 그림에서 민중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역사적 인식을 포기하지 않으며 성태훈은 전통과 현대, 역사와 미래, 자연과 인간이 함께 춤추는 유토피아적 풍경을 꿈꾸고 있다. 서쪽나라로 향하던 배가 언젠가 그 쪽의 해안에 다다랐을 때 그는 또 어떤 시대의 진경(眞景)을 보여줄 것인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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