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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전 성태훈 ‘선유도 왈츠’

세계일보
2023-02-17T08: 106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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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풍경 속 거대 담론의 흔적…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다

입력 : 2023-02-16 19:55:04 수정 : 2023-02-16 19:55:04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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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展 성태훈 ‘선유도 왈츠’

아크릴로 그렸지만 동양화적 준법 느낌
기획부터 제작까지 무려 6년 걸린 대작
개인사와 현대사 뒤엉켜 춤추는 축제성
일상과 현실 속에 숨은 부조리 현상 주목
이질적 시간·사건 충돌로 긴장감 부여해

거대한 배가 서쪽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선유도 파크’라고 쓴 배 이름이 보인다. 양화대교 옆 작은 섬 선유도(仙遊島)는 신선이 노닐었던 곳이다.

한국화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꾸준히 모색해 온 작가 성태훈이 재료나 소재, 주제 면에서 또 다른 도약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대작 ‘선유도 왈츠’를 공개했다. 아크릴로 그렸지만 동양화의 준법과 채색법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 그림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6년여 세월이 걸렸다. 가히 그의 작품세계를 총결산하는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만하다.

‘선유도 왈츠’(2023. 220X520㎝). 작가 성태훈이 6년의 세월 동안 공들여 완성한 대작으로 동양화의 채색법이 강하게 묻어난다.

 

사물과 도리를 밝게 통찰하는, 더없이 완전한 지혜인 ‘반야’에 의지해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떠가는 배를 그린 불교미술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의 현대적 버전인 셈이다.

세계일보 창간 34주년 기념 ‘세계미술전’에서 만날 수 있다. 올해의 선정작가 성태훈이 ‘선유도 왈츠 Seonyudo Waltz’라는 주제를 내걸고,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반긴다. 신작 ‘선유도 왈츠’ 시리즈를 비롯해 ‘무지개가 매화에 피다’ 시리즈, 그리고 과거 대표작 등 총 18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교통사고로 인한 병원 생활, 부모님의 작고, 결혼, 출산, 킵워킹펀드상 수상, 작품 활동, 후원자들과 도움을 준 사람들 등 지나온 삶의 여정을 모티프로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왈츠에 녹여낸다. 또한 우리나라 굵직한 현대사들(8·15, 6·25, 4·19, 6·10, 5·18)과 남북분단으로 인한 긴장 상황을 전투헬기와 장갑차로 표현했다.

개인사와 현대사가 뒤엉켜 춤추는, 왈츠의 축제성이 두드러지는 이 그림에는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라는 가요 ‘아! 대한민국’의 낙천적인 가사로는 설명 안 되는 부분들이 숨어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애드벌룬, 배를 따라 뛰어오르는 돌고래, 폭발하듯 치솟는 대형분수, 주변의 수륙양용차, 그리고 하늘에서 감시하듯 내려보는 군 헬기는 선상의 행복감을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들로, 은근히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거대한 돛처럼 느껴지는 미루나무 또한 동요 속 낭만이 아니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상징이기도 하다.

이전처럼 성태훈의 화면은 평범한 일상을 담은 온화로운 풍경으로 읽히지만 그 속에는 전쟁의 공포, 쿠데타와 민주화 등 심각한 거대담론의 흔적들이 배치되어 있다. 마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속에서 일상에 가려져 있는 광기, 아름다움 속에 스며든 추악한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그의 그림은 시대와 역사, 일상과 현실 속에 숨은 부조리한 현상을 드러내 보인다.

성태훈의 그림은 언뜻 보아 전통에 기반을 둔 한 장의 수묵화로 인식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들어간 현대 아이콘들 탓에 또 다른 맥락의 사건성이 개입되면서 화면은 전통과 현대의 요소 간 갈등을 유발한다. 이런 이질적인 시간과 사건의 충돌은 그토록 고요했던 화면에 긴장감 어린 활력을 부여하면서, 어느 순간 오히려 전통과 현대가 화해하는 접점을 이끌어 낸다.

전반기를 대표하는 작품은 ‘길을 묻다Ⅰ’(2006)이다. 전쟁의 참상인 콘크리트 폐허로 산수의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시원한 폭포가 흐르는가 하면 돌다리도 있고 걸프전의 작전에 돌입한 군인들, 등산하는 사람들, 사진 찍는 사람들, 화투 치는 사람들, 그리고 구석에서 자위하는 한 남자, 상공을 배회하는 군 헬기까지 시간과 공간이 다른 각각의 맥락과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무거운 분위기의 전형적인 산수화를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담긴 풍경화로 변모시켜 놓았다.

‘날아라 닭’(122X97㎝)

전반기 시공간의 은유적 결합은 이후 ‘날아라 닭’(2009) 시리즈로 전개된다. 날 수 없는 존재들의 비상을 고고한 지조의 상징인 매화와 대치시킴으로써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인 풍경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또는 간극에서 느껴지는 부조리를 풍자한 세태고발이다. ‘날아라 닭’ 시리즈는 옻칠화의 기법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점점 동양적인 색채와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주제의식보다는 옻칠이 자아내는 채색적 효과와 깊이에 집중하게 되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오방색의 무지갯빛 꽃이 피는 ‘웃는 매화’(2022)로까지 이어지면서 급기야 더욱 대중적인 이미지를 지닌 우리 시대의 민화로 발전했다.

축제나 파티는 구경꾼과 참여자가 분리된 볼거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향유하는 떠들썩한 판, 마당놀이다. 등장인물이 저마다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각각의 소주제를 이끌어가는 총체적 카니발의 하모니에서 우리는 한국 전통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의 어느 부분을 잘라내어 확대할지라도 하나의 독립된 그림으로서 손색이 없다. 서구 고전 미론이 얘기하는 ‘다양성의 통일과 조화’가 여기에 있다. 산수화, 풍경화, 풍속화, 기록화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냈다.

성태훈 특유의 노력과 시도는 주목받아야 한다. 선비의 그림에서 민중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역사 인식을 포기하지 않으며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춤추는 유토피아적 풍경을 꿈꾸고 있다. 서쪽 나라로 향하던 배가 언젠가 어느 해안에 다다랐을 때 그가 또 어떤 시대의 진경(眞景)을 펼쳐낼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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